조선시대 왕들이 선왕들의 능을 돌보기 위해 행차했던 길로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진다.
동대문 → 동묘(신설동) → 보재원(안암동) → 종암동 입구 → 월곡동길→ 화랑로 → 망우동(양원리) →옛 망우리 고개 (중앙선 망우리터널) → 동구릉
아차산을 주봉으로 하여 그 서쪽 기슭에 조선시대 국립 목장격인 살곶이 목장이 있었다. 1788~1802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조선 사복시에서 만든 살곶이 목장 지도에 의하면 그 둘레는 약 20km에 이르는데, 여러 문헌기록에는 30~40리에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살곶이 목장의 구체적인 경계를 살펴보면 동쪽 경계는 아차산 줄기가 되고 서쪽 경계는 오늘날의 배봉산으로부터 한양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구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된다. 북쪽 경계는 오늘날의 월릉교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중랑포 아래쪽에서 냇물과 벌판을 가로질러 면목리 위쪽에 아차산 줄기까지 이어지는 선이었다. 이 경계는 명종 이전에는 목책을 세운 토성이었다가 그 이후에는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1633년(현종4년)에 허목이 쓴 한성목장지도 중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에 살곶이 목장이 나와있다.
이 지도에서 살곶이 목장은 세종 때와 연산군 때 일시 폐지되었다가 다시 설치되었는데 목장에서는 왕이 사냥할때 필요한 말을 기르고 훈련시켰으며, 군사의 무예 검열과 왕의 사냥터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살곶이 목장은 헌종 12년(1846년)에 익종의 능인 수릉을 천장산에서 용마봉으로 옮겨옴에 따라 폐지되었다가 철종 6년(1855년) 수릉이 동구릉으로 옮김에 따라 다시 목장으로 복구되었으나, 1904년 순종황제의 비인 순명황후를 지금의 광진구 능동 어린이 대공원 내 유강원에 안장함으로써 폐지 되었다.